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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주저리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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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의 아버지...

 

ebs 지식채널 e에 소개된 그 분....

 

6.25당시 러셀 브레이즈델 중령의 실화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 사실이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는군요

 

 

 

헤스 대령의 미담 담은 할리우드영화 <전송가>에 25명 한국전쟁고아 불쌍한 모습 비춰

1956년 1월28일치 일간신문에는 제7회 동계올림픽 출전단에 대한 기사가 일제히 떴다.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36개국에서 947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한국은 전란 통에 전 대회에 불참한 터. 그래선지 임원 3명, 선수 4명, 모두 합해서 고작 7명인 단출한 선수단이었지만, 감격과 관심은 예상보다 높았다. 언론은 “파란 빤-쓰에 황갈색 코―트”를 휘날리며 보무 당당하게 입장하는 한국선수단이 현지 관중에게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썼다. 하지만 할리우드에 입성하게 된 25명의 고아들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해맑게 웃고 있는 고아들의 표정과 한 미군의 얼굴을 합성한 이 사진은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의 아름다운 결정(結晶)”이라 불린 사연과 함께 같은 날 각 신문의 톱을 모조리 차지했다.



 

주인공은 제주도 한국보육원에 있는 아이들과 한국전쟁 당시 이들을 수송기를 통해 피신시켰던 딘 E. 헤스 대령이었다. 헤스 대령은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 훈련관으로 참전한 인물로, 고아들을 제 자식처럼 돌본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6년 전 ‘고아작전’이라 불리는 계획을 실행하면서, 훗날 ‘한국 고아의 아버지’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사연은 이렇다. 못 쓰게 된 탱크에 숨어살며 연명하던 고아들을 보살피며 서울의 중앙고아원에 보내던 그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이들을 제주도로 피난시키기 위해 한국 해군에 LST(전차 상륙용 주정)를 제공해 달라고 부탁한다. 퇴각하기 바빴던 것일까. 인천 부둣가에는 무려 1천여명의 고아들이 모였으나 피난선은 오지 않았고, 그 와중에 7명의 고아들은 질병과 기아로 죽어갔다. 결국 미 공군에 급전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1950년 12월20일, 18기의 군 수송기로 이 고아들을 제주도의 한 농립학교로 이송하는 데 성공한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4439

 

http://www.imdb.com/title/tt0050171/

 

 

 

돈을 많이번 사업가, 과학자 ,연예인 모두 휼륭하지만 이런 분들이 진정한 우리시대의 영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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